콜카타에서의 감동적인 마지막날. 움직이지 못하고 말못하는 아이들의 노래와 감사 인사와 선물로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날 나이트 클럽을 끝으로 컬카타는 끝이났다.
목요일 13일 출발해서 14일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바라나시에는 기로와 혜정 선영이 있었다.
그리고 24일. 10일이 지났다. 어떻게 10일을 보냈는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났는지 도대체 알수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않고도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다니~
비를 몰고온 덕에 이틀간은 질척거리는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들을 소똥 피해가며 (그래봤자 다 섞여서 진흙이 소똥이고 소똥이 개똥이고.. 사람오줌이고 뭐~ ㅎㅎ) 일행들이 잡아놓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여행자 거리까지 거리 익히기 전부였다. 물론 아직도 모른다. 난 평생 알수없는 바라나시의 골목골목들. 정말 늘 새롭고 신선하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혼자 시간이 날때마다 갓트에 나갔다. 처음 갓트에 갔을때는 오래된 건물들과 강. 만으로 좋다가 작은 화장터에서 몇시간이고 앉아서 하염없이 시체 한구가 다 탈때까지 의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최초의 편지는 그래서 친 언니가 되었는데. 아마도 발송하지 못할듯하다.ㅎㅎ(언니. 나중에 따로 얘기할께~^^)
그리고 며칠간은 갓트에 나가 걷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인도 친구들 사귀고. 팔찌도 만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한국 음식 먹는것도 아주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사실 고백하는데, 나는 여행 중에 두가지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하나는 피부병이고. (늘 건조하거나. 땀이 날땐 나는 땀띠같은것인데, 사실 한국에서도 겨울엔 가끔 있었지만. 동남아 여행부터 심하게 일어나서 좀 괴로웠다) 또 하나는 변비이다. 이것도 한국부터의 병이었는데, 남들 다 설사한다는 인도에서 나는 너무 심각한 변비로 무척 고통스러웠다.
아무튼. 이 변비덕에 속이 더부룩하고 인도음식에 물릴때쯤 한국 레스토랑과 게스트하우스에서 먹는 음식들은 가뭄의 단비. 인도 음식이 나무 잘 맞아 살이 찌고있었지만. 나는 한국인이었던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의 고질병도 차츰 좋아지고있다.
그렇게 일주일이 더 넘었을때. 포카라를 가기위해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취소해서 200루피를 날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갓트에 가서 해뜨는것을 보거나, 해지는걸 보고~ 성스런 총각들의 푸자의식을 보는일.
인도인들과 실없는 말장난이나 하고, 친해진 악기상 마헨드라에게 가서 짜이나 얻어먹으며 하늘하늘 이쁜 일본남자애에게 짖굳은 농담이나 걸고, 옆집 영수네가서 돈도 안내고 곁눈질로 배워서 영수랑 종일 노가리 까며 팔찌 만드는 일상.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 앉아, 내공있는 메니저의 멋진 한국 음악을 들으며 빨래 냄새나 맡는 일상이 좋아서.. 21일 포카라로 향하던 걸음을 돌리고 27일까지 남기로 했다.
시바신이 자신의 결혼식에 날 초대했다며 뻥이나 치면서...
일정이 덕분에 꼬였다. 그 덕에 가고싶은곳만 길게 잡게되는 군더더기 없는 여행이 되고있다. 누군가에게 "나 거기 가봤어!"라고 말할순 없는 여행자가 되어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이렇게 길고 느린 걸음의 여행이 참 좋다.
그리고 오늘 기로로가 갔다. 아그라 찍고 라자스탄 돌고, 자이살메르에서 낙타사파리를 하는데... 배웅하는김에 기차표를 끊어버렸다. 2박 3일을 걸려 기차타고 나도 자이살메르로 가기로 결정했다.
낙타사파리는 여자 혼자는 비추라하여 애들 있을때 가서 사파리 하고. 나는 다시 라자스탄 돌고 바라나시나 델리로 갈 생각이다. 3월 17일 있는 홀리페스티발(물감축제)을 잘 즐기기 위해 보름간 라자스탄을 돌기로 했다. 그리고 축제이후에 네팔로 들어간다.
그럼 네팔에서 한달을 있을수가 있다. 네팔일정을 짧게 줄일 필요가 없어서 기분이 좋다.
지금은 멕도날드다.
기로 배웅하고 테켓 끊고. 20분 정도 걸어서 IP몰에 왔다. 혼자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여기가 한국인지. 인도인지 모르겠다.
혼자서 영화를 보러 오면서 인도인들이 끊임없이 호객행위에 장난을 거는게, 여행자의 마음이었으면 놀라기도 했겠지. 혼자 저녁 7시 반. 영화를 볼생각도 안했겠지만~
아무튼 내가 여행자와 현지인의 중간 마음으로 바라나시에 살고 있다는것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콜카타에서도 그렇긴했다.
아마도 나는 현지 친구들과 잘 친해지는 편인데 ,그것이 나를 현지화시키는 가장 빠른 이유인듯하다.
아무튼 바라나시는 이제 3일 남았다.
기로는 갔고~ 멕간으로 갔던 선영씨는 몸이 좋지 않아 델리에서 리턴해 왔고(설사를 해도 바라나시에서 하겠다며~ ㅎㅎ 돈을 얼마를 날린것이야~ㅎㅎ). 리쉬케쉬에 갔던 혜정은 이틀만에 무척 좋은 곳이지만 심심하다며 바라나시러 돌아왔다. 그리고 선영과 혜정은 타블라를 배우기로 했다. 한국에 가서 스키 타겠다던 성혁은 거금을 들여 시타르를 사고는 온종일 연습실에 눌러 앉아 버렸다.
포카라로 혼자 트레킹 갔던 23살 유니(내게 소원팔찌를 만들어준 아이)는 25일날 바라나시에 오기로 해놓고는 포카라가 좋다며 비자연장을 해버렸다.
이곳은 개미지옥일지도. 이놈의 인도~..... 이놈의 바라나시... 아무것도 없으면서 왜 이러는지. 정말 ㅎㅎㅎㅎㅎㅎ